기헌공(杞軒公) 이성룡(李聖龍) 1672(현종 13)~1748(영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초명은 운룡(雲龍), 자는 자우(子雨), 호는 기헌(杞軒). 1714년(숙종 4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경종 때에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으로 몇 차례 군덕(君德)에 관한 소를 올렸다. 여러번 승지로 발탁되고 동지사(冬至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전라도관찰사·도승지를 거쳐 1740년 대시간으로 있을 때 죽은 유봉휘(柳鳳輝)와 조태구의 삭탈관직과 이광좌(李光佐)의 파직을 주장하다가 삭직되고 이듬해 공조판서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경주이씨중앙화수회: http://gjlee.org/dr4/men/men_list.asp 이성룡(李聖龍) 1672년(현종 13)~1748년(영조 24) 조선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