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二)/충민공◇이명민

[세조실록] 계유년의 난신에 연좌된 사람들을 방면하다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1. 14:37

세조실록 47권, 세조 14년 9월 6일 임술 3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계유년의 난신에 연좌된 사람들을 방면하다


○放癸酉年亂臣緣坐人外方從便者, 大丁金他乃鄭冠純祐安祐孼姪則金吾無只張貴南末孫奉汝諧孼叔德生黃善寶張生ㆍ叔黃信黃義軒末同玉中謹中哲守鄭孝全興生趙順生趙銛鄭苯世存玉守孝同玉同朴季愚彭老金衍義同趙完圭加麻耳三元趙藩永達植培馬叱同介叱同牛叱同永山命山仲恩介叱同元矩元美益達高德稱仲規石同萬同光大金宗瑞永德無適明察尹處恭上佐尹濟尹濱李命敏孟準銀同銀哲興祖榮祖哲同煥昇年同末孫吾乙未同芿叱同仲同李賢老順之李耕㽥維漢末同季同李儼石同未同世中; 及趙衷孫給付功臣家爲婢者, 張貴南鶴非末非黃善寶召史趙完圭精正仲恩貴德元矩心伊梁玉義非金有德莫莊黃貴存厚存閏存; 諸邑安置者, 元矩孝孫高德稱孟規崔老內隱伊內隱德。 丙子年亂臣緣坐人內外方便從者, 趙淸老壽山江山牛叱同千同河偉地河浦河汾龜同李徽孼李才權著權孫件伊同莫同李昊永石朴仲林斯悌斯枰斯楨成年哲守介叱同朴崝敬孫謙文信文守文思文宋石同宋仞金文起孼叔仇守介叱知成勝萬年兆年億年柳誠源柳種今年生守佐文山李智英孼叔李遺李義成燃成炤安祖述崔孟漢崔季漢; 給付功臣家爲婢者, 權著召史許慥小斤召史李裕基孼妹孝全崔沔莫非權著孼妹召史。 乙酉年亂臣緣坐人內, 諸邑安置者, 金處義犀角文孫龍角、叔孝忠、孼叔義松崔潤孝同哲山哲同水丁奉石柱安唐; 官婢定屬者, 崔潤孼妹水德; 待年爲奴者, 金處義三角麟角三同凡伊龜角終角崔潤孼姪春同小山任實付處吳凝義州充軍文尙德、官奴永屬海南 李崗咸悅 李閒、定屬大興 劉昭忠州 崔倫、流人光陽 李宗根順天 安克頓寧海 裵孝思晋州付處羅裕善。 時, 世子以上疾劇, 憂懼不知所爲, 議放癸酉以來亂臣叔姪姊妹之緣坐者凡二百餘人。 左議政朴元亨功臣婢妾義非, 亦在放中, 元亨頗懷不平, 謂同副承旨韓繼純曰: "義非本系賤人, 放之亦賤, 不放亦賤。 況此婢乃我功臣錄券付婢子也, 其代身亦應充給, 請申此意。" 繼純默然, 左贊成金國光繼純曰: "此事何不圖之於初? 今雖不卽啓達, 以黃標蔽付義非二字而下傳旨, 則不妨。" 繼純又默然, 商量者久之, 於義非二字傍付空黃標, 以元亨所言申之。 世子曰: "今朝蓬原君云: ‘緣坐者雖本系賤人, 放還本主, 亦上恩也。’ 業已議定, 不可回異。" 遂不聽。 昌孫功臣奴婢, 亦有放者, 昌孫略不介懷。 義非者, 初爲元亨再從叔妾, 旣被緣坐, 元亨遂占爲功臣婢作妾, 生二子。


계유년(癸酉年)450) 의 난신(亂臣)에 연좌(緣坐)된 사람으로 외방 종편(外方從便)한 자인 대정(大丁)의 숙부(叔父) 김타내(金他乃), 정관(鄭冠)의 숙부(叔父) 정순우(鄭純祐), 안우(安祐)의 서얼(庶孽) 조카 즉금오무지(則金吾無只), 장귀남(張貴南)의 숙부(叔父) 장말손(張末孫), 봉여해(奉汝諧)의 서얼 숙부(叔父) 봉덕생(奉德生), 황선보(黃善寶)의 조카 황장생(黃張生)·숙부(叔父) 황신(黃信), 황의헌(黃義軒)의 조카 황말동(黃末同)·황옥중(黃玉中)·황근중(黃謹中)·황철수(黃哲守), 정효전(鄭孝全)의 조카 정흥생(鄭興生), 조순생(趙順生)의 조카 조섬(趙銛), 정분(鄭苯)의 조카 정세존(鄭世存)·정옥수(鄭玉守)·정효동(鄭孝同)·정옥동(鄭玉同), 박계우(朴季愚)의 조카 박팽로(朴彭老), 김연(金衍)의 조카 김의동(金義同), 조완규(趙完圭)의 조카 조가마이(趙加麻耳)·조삼원(趙三元), 조번(趙藩)의 조카 조영달(趙永達), 식배(植培)의 조카 마질동(馬叱同)·개질동(介叱同)·우질동(牛叱同)·영산(永山)·명산(命山), 중은(仲恩)의 조카 개질동(介叱同), 원구(元矩)의 숙부 원미(元美)·원익달(元益達), 고덕칭(高德稱)의 조카 고중규(高仲規)·고석동(高石同)·고만동(高萬同)·고광대(高光大), 김종서(金宗瑞)의 조카 김영덕(金永德)·김무적(金無適)·김명찰(金明察), 윤처공(尹處恭)의 조카 윤상좌(尹上佐)·윤제(尹濟)·윤빈(尹濱), 이명민(李命敏)의 조카 이맹준(李孟準)·이은동(李銀同)·이은철(李銀哲)·이흥조(李興祖)·이영조(李榮祖)·이철동(李哲同)·이환승(李煥昇)·이연동(李年同)·이말손(李末孫)·이오을(李吾乙)·이미동(李未同)·이잉질동(李芿叱同)·이중동(李仲同), 이현로(李賢老)의 숙부(叔父) 이순지(李順之), 이경유(李耕㽥)의 조카 이유한(李維漢)·이말동(李末同)·이계동(李季同)·이엄(李儼)·이석동(李石同)·이말동(李末同)·이세중(李世中)조충손(趙衷孫)과 공신(功臣)의 집에 급부(給付)되어 계집종이 된 자인 장귀남의 누이 학비(鶴非)·말비(末非), 황선보의 누이 소사(召史), 조완규의 누이 정정(精正), 중은의 누이 귀덕(貴德), 원구(元矩)의 누이 심이(心伊), 양옥(梁玉)의 누이 의비(義非), 김유덕(金有德)의 누이 막장(莫莊), 황귀존(黃貴存)의 누이 후존(厚存)·윤존(閏存)과 여러 고을에 안치(安置)된 자인 원구의 조카 원효손(元孝孫), 고덕칭(高德稱)의 조카 고맹규(高孟規), 최노(崔老)의 누이 내은이(內隱伊)·내은덕(內隱德)과 병자년(丙子年)451) 난신(亂臣)에 연좌된 사람으로 내외방(內外方)에 종편(從便)한 자인 조청로(趙淸老)의 숙부(叔父) 조수산(趙壽山)·조강산(趙江山), 조카 조우질동(趙牛叱同)·조천동(趙千同), 하위지(河緯地)의 조카 하포(河浦)·하분(河汾)·하귀동(河龜同), 이휘(李徽)의 서얼 숙부(叔父) 이재(李才), 권저(權著)의 조카 권손건(權孫件)·권이동(權伊同)·권막동(權莫同), 이호(李昊)의 조카 이영석(李永石), 박중림(朴仲林)의 조카 박사제(朴斯悌)·박사평(朴斯枰)·박사정(朴斯禎)·박성년(朴成年)·박철수(朴哲守)·박개질동(朴介叱同), 박쟁(朴崝)의 조카 박경손(朴敬孫)·박겸문(朴謙文)·박신문(朴信文)·박수문(朴守文)·박사문(朴思文), 송석동(宋石仝)의 숙부 송인(宋仞), 김문기(金文起)의 서얼 숙부(叔父) 김구수(金仇守)·김개질지(金介叱知), 성승(成勝)의 조카 성만년(成萬年)·성조년(成兆年)·성억년(成億年), 유성원(柳誠源)의 조카 유종금(柳種今)·유연생(柳年生)·유수좌(柳守佐)·유문산(柳文山), 이지영(李智英)의 서얼 숙부 이유(李遺)·이의(李義)성연(成燃)·성소(成炤)·안조술(安祖述)·최맹한(崔孟漢)·최계한(崔季漢)과, 공신(功臣)의 집에 급부(給付)되어 계집종이 된 자인 권저의 누이 소사(召史), 허조(許慥)의 누이 소근(小斤)·소사(召史), 이유기(李裕基)의 서얼 누이 효전(孝全), 최면(崔沔)의 누이 막비(莫非), 권저의 서얼 누이 소사(召史)와, 을유년(乙酉年)452) 난신에 연좌된 사람 안에서 여러 고을에 안치된 자인 김처의(金處義)의 조카 김서각(金犀角)·김문손(金文孫)·김용각(金龍角), 숙부 김효충(金孝忠), 서얼 숙부 김의송(金義松), 최윤(崔潤)의 조카 최효동(崔孝同)·최철산(崔哲山)·최철동(崔哲同)·최수정(崔水丁), 봉석주(奉石柱)의 숙부 봉안당(奉安唐)과, 관비(官婢)로 정속(定屬)된 자인 최윤의 서얼 누이 수덕(水德),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서 종[奴]이 된 자인 김처의의 조카 김삼각(金三角)·김인각(金麟角)·김삼동(金三同)·김범이(金凡伊)·김귀각(金龜角)·김종각(金終角) 최윤의 서얼 조카 최춘동(崔春同)·최소산(崔小山)임실(任實)에 부처(付處)된 오응(吳凝), 의주(義州)에 충군(充軍)된 문상덕(文尙德)과, 관노(官奴)로 해남(海南)에 영속(永屬)된 이강(李崗), 함열(咸悅)에 영속된 이한(李閒), 대흥(大興)에 정속(定屬)된 유소(劉昭), 충주(忠州)에 정속된 최윤(崔倫)과 유인(流人)으로 광양(光陽)이종근(李宗根), 순천(順天)안극돈(安克頓), 영해(寧海)배효사(裵孝思)진주(晉州)에 부처된 나유선(羅裕善)을 방면하였다. 이때에 세자(世子)가 임금의 병이 심하여 근심하고 걱정하며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계유년(癸酉年)453) 이래의 난신의 숙질(叔姪)과 자매(姉妹)의 연좌자(緣坐者) 무릇 2백여 인을 의논하여 방면한 것이다. 좌의정(左議政) 박원형(朴元亨)의 공신 비첩(功臣婢妾) 의비(義非)도 또한 방면한 중에 들어 있었으므로 박원형이 자못 불평(不平)을 품고 동부승지(同副承旨) 한계순(韓繼純)에게 말하기를,

"의비는 본래 천인(賤人)에 속하였으므로 방면해도 또한 천인(賤人)이요, 방면하지 아니한다 해도 또한 천인이며, 하물며 이 계집종[婢]은 곧 나의 공신 녹권(功臣錄券)에 기록된 비자(婢子)이겠는가? 그를 대신하여 또한 충급(充給)에 응(應)할 것이니, 청컨대 이러한 뜻을 주달(奏達)하라."

하였으나, 한계순이 묵연(默然)하니, 좌찬성(左贊成) 김국광(金國光)한계순에게 말하기를,

"이 일을 어찌하여 처음에 도모하지 아니하였는가? 지금 비록 즉시 계달(啓達)하지 아니하고 황표(黃標)로 의비(義非)란 두 글자를 덮어 붙여 전지(傳旨)를 내리더라도 방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나, 한계순이 또 묵연하더니, 상량(商量)하기를 오랫동안 하다가 의비란 두 글자 곁에 빈 황표(黃標)를 붙이고 박원형의 말한 바를 주달(奏達)하니, 세자가 이르기를,

"오늘 아침에 봉원군(蓬原君)454) 이 이르기를, ‘연좌된 자가 비록 본래 천인에 속하였다고 하더라도 본주(本主)에게 방환(放還)하는 것이 또한 성상의 은총입니다.’라고 하였으며, 일이 이미 의논하여 정해졌는데 되돌려 달리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하고, 드디어 듣지 아니하였다. 정창손의 공신 노비도 또한 방면된 자가 있었으나 정창손은 대략 개의(介意)하지 아니하였다. 의비는 처음에 박원형의 재종숙(再從叔)의 첩(妾)이었는데, 이미 연좌되자 박원형이 드디어 공신비(功臣婢)로 점유하여 첩을 삼아 두 아들을 낳았다.


【태백산사고본】 17책 47권 20장 A면 【국편영인본】 8책 209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註 450] 계유년(癸酉年) : 1453 단종 원년.
[註 451] 병자년(丙子年) : 1456 세조 2년.
[註 452] 을유년(乙酉年) : 1465 세조 11년.
[註 453] 계유년(癸酉年) : 1453 단종 원년.
[註 454] 봉원군(蓬原君) : 정창손.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ga_11409006_003



[참고]
이명민(李命敏)의 조카 이맹준(李孟準)·이은동(李銀同)·이은철(李銀哲)·이흥조(李興祖)·이영조(李榮祖)·이철동(李哲同)·이환승(李煥昇)·이연동(李年同)·이말손(李末孫)·이오을(李吾乙)·이미동(李未同)·이잉질동(李芿叱同)·이중동(李仲同)』에서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에 의하면
이맹준(李孟準)은 판관공(判官公) 이불민(李不敏)의 子이고,
이영조(李榮祖)·이흥조(李興祖)는 주부공(主簿公) 이물민(李勿敏)의 子이다.
또, 이말손(李末孫)은 현감공(縣監公) 이사강(李思剛)의 子이고, 판서공(判書公) 이양직(李陽直)의 孫子이다.

이영발(李英發), 이은동(李銀同)은 경주이씨(慶州李氏) 대종보(大宗譜)에 기록이 없으나,
[세조실록], [성종실록]에 의하면 이은동(李銀同)이영발(李英發)의 子이고,
충민공(忠愍公) 이명민(李命敏)의 조카이다.
이은철(李銀哲)도 충민공(忠愍公) 이명민(李命敏)의 조카인 것으로 보아
이은동(李銀同)의 동생[弟]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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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동(李銀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필기

[상세정보]
[정의] 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이영발(李英發)이고, 이명민(李命敏)의 조카이다.

[활동사항] 1453년(단종 1) 이명민(李命敏)이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김종서·황보인 등과 함께 살해되자 조카 이은동은 연좌(緣坐)되어 관노가 되었다. 1468년(세조 14)에 임금의 병이 심하여 세자(世子)가 계유년(癸酉年) 이래의 난신(亂臣)의 숙질(叔姪)과 자매(姉妹) 중 연좌자(緣坐者) 200여 인을 방면하였다.

이 때 이명민(李命敏)의 조카인 이은동은 다른 형제인 이맹준(李孟準)·이은철(李銀哲)·이흥조(李興祖)·이영조(李榮祖)·이철동(李哲同)·이환승(李煥昇)·이연동(李年同)·이말손(李末孫)·이오을(李吾乙)·이미동(李未同)·이잉질동(李芿叱同)·이중동(李仲同) 등과 함께 방면되었다.

그러나 난신역적(亂臣逆賊)에 연좌된 자로서 나이 성년(成年)이 되면 다시 여러 군읍(郡邑)에 예속시켜 노비(奴婢)로 삼는 규례에 따라 1482년(성종 13)에 강진(康津)의 관노(官奴)가 되었다. 그 뒤 1491년(성종 22)에 고신(告身)을 되돌려 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출처] 디지털용인문화대전
  http://yongin.grandculture.net/Contents?local=yongin&dataType=01&contents_id=GC009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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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41권, 성종 5년 4월 17일 신미 3번째기사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의금부에 명하여 지방과 관청의 노비·서리로 정속한 자들을 방면하게 하다


○傳旨義禁府: "放珍島永屬官婢小斤加伊ㆍ婢溫伊ㆍ婢卜今ㆍ婢老介ㆍ婢內隱非ㆍ婢丁非ㆍ婢卜非ㆍ婢卜加伊淸河永屬官奴李文仲興海永屬官奴李承仲南海永屬官奴李禮中康津安置李芿叱同李銀同李金同仲孫金生叔丁仁丁終同長鬐永屬官奴李永山順天永屬官奴李介甫李陽生夫老只下通李同水原安置許惟禮、造紙署徒年定役朴延年朴侶韓玉山許山鄭麟孫金仲元徐用守金今山魯叔文金生金長守咸善同李莫同金有信林貴成龍石生崔乃斤乃咸連鄭止善池古進鄭文礪山付處孟碩欽龍安付處金承順南原付處金性原、中學書吏定屬趙忠武朴好謙。"


의금부(義禁府)에 전지(傳旨)하기를,

"진도(珍島)에 영속(永屬)한 관비(官婢) 소근가이(小斤加伊)와 여종[婢] 온이(溫伊)·여종 복금(卜今)·여종 노개(老介)·여종 내은비(內隱非)·여종 정비(丁非)·여종 복비(卜非)·여종 복가이(卜加伊), 그리고 청하(淸河)에 영속(永屬)한 관노(官奴) 이문중(李文仲)과, 흥해(興海)에 영속한 관노 이승중(李承仲), 남해(南海)에 영속한 관노 이예중(李禮中)과, 강진(康津)에 안치(安置)한 이잉질동(李芿叱同)·이은동(李銀同)·이금동(李金同)·이중손(李仲孫)·김생숙(金生叔)·정인(丁仁)·정종동(丁終同)장기(長鬐)에 영속한 관노 이영산(李永山)과, 순천(順天)에 영속한 관노 이개보(李介甫)·이양생(李陽生)·부노(夫老)·지하통(只下通)·이동(李同)과, 수원(水原)에 안치(安置)한 허유례(許惟禮), 그리고 조지서(造紙署)에 도년(徒年)205) 으로 정역(定役)한 박연년(朴延年)·박여(朴侶)·한옥산(韓玉山)·허산(許山)·정인손(鄭麟孫)·김중원(金仲元)·서용수(徐用守)·김금산(金今山)·노숙문(魯叔文)·김생(金生)·김장수(金長守)·함선동(咸善同)·이막동(李莫同)·김유신(金有信)·임귀성(林貴成)·용석생(龍石生)·최내근내(崔乃斤乃)·함연(咸連)·정지선(鄭止善)·지고진(池古進)·정문(鄭文)과, 여산(礪山)에 부처(付處)한 맹석흠(孟碩欽)용안(龍安)에 부처한 김승순(金承順)과, 남원(南原)에 부처한 김성원(金性原)과 중학(中學)206) 서리(書吏)로 정속(定屬)한 조충무(趙忠武)·박호겸(朴好謙)을 방면(放免)하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책 41권 8장 A면 【국편영인본】 9책 102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註 205] 도년(徒年) : 도(徒) 1년 형을 말함.
[註 206] 중학(中學) : 사학(四學)의 하나.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504017_003



*[참고]순천(順天)에 영속한 관노 이개보(李介甫)·이양생(李陽生)』 이란 기록은
계성군(鷄城君) 이양생(李陽生)의 기록인지 불문명하다.
관노로 갔다는 것이 터무니 없는 것이고 또다른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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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38권, 성종 13년 2월 5일 갑진 4번째기사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의금부에서 난신 역적에 연좌된 자로 이때에 성년이 된 자들을 노비 삼기를 청하다


○義禁府啓: "亂臣逆賊緣坐年未滿者, 曾授族親, 今皆年滿, 請屬諸邑爲奴婢。 康純阿只, 潭陽, 高福老永同, 大靜, 金昌凡伊, 淳昌, 李之楨順同, 星州, 崔戒之三利, 昆陽, 李仲淳多波, 大丘, 李宗根石乙同, 順天, 崔漢宗叔達韓繼春定非李林同叱金、嚴興發處智等, 河東, 金玉生豆應夫童萬, 長興, 李英發銀同, 康津, 金河生閑同, 迎日, 崔得京汝虛, 長鬐, 孫田生丁石, 興陽, 欣萬孫山, 光陽, 金漢京貴珍, 咸原站。" 從之。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난신 역적(亂臣逆賊)에 연좌(緣坐)된 자로서 나이 성년(成年)이 되지 못한 자들을 일찍이 족친(族親)들에게 보내 주었습니다만, 이제 그들의 나이가 성년이 되었으니, 그들을 여러 군읍(郡邑)에 예속시켜 노비(奴婢)로 삼아야 합니다. 강순(康純)의 조카 강아지(康阿只)담양(潭陽)에, 고복로(高福老)의 조카 고영동(高永同)대정(大靜)에, 김창(金昌)의 손자 김범이(金凡伊)순창(淳昌)에, 이지정(李之楨)의 조카 이순동(李順同)성주(星州)에, 최계지(崔戒之)의 아들 최삼리(崔三利)곤양(昆陽)에, 이중순(李仲淳)의 딸 이다파(李多波)대구(大丘)에, 이종근(李宗根)의 조카 이석을동(李石乙同)순천(順天)에, 최한종(崔漢宗)의 손자 최숙달(崔叔達)한계춘(韓繼春)의 딸 한정비(韓定非)이임(李林)의 아들 이동질금(李同叱金)엄흥발(嚴興發)의 아들 엄처지(嚴處智) 등은 하동(河東)에, 김옥생(金玉生)의 조카 김두응부(金豆應夫)·김동만(金童萬)장흥(長興)에, 이영발(李英發)의 아들 이은동(李銀同)강진(康津)에, 김하생(金河生)의 아들 김한동(金閑同)영일(迎日)에, 최득경(崔得京)의 조카 최여허(崔汝虛)장기(長鬐)에, 손전생(孫田生)의 아들 손정석(孫丁石)흥양(興陽)에, 흔만(欣萬)의 손자 손산(孫山)광양(光陽)에, 김한경(金漢京)의 딸 김귀진(金貴珍)함원참(咸原站)에 예속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0책 138권 3장 A면 【국편영인본】 10책 295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가족-친족(親族) / 신분-천인(賤人)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302005_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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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54권, 성종 22년 6월 22일 정묘 2번째기사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이조에 전지하여 신주·이은동·정성근 등의 고신을 돌려주게 하다


○傳旨吏曹, 還給辛柱李銀同鄭誠謹曹浩尹碩成守沂吳繼貞李世綸安末孫朴無作崔末終高守福金茂同睦自山秦萬石宋守生等告身。


이조(吏曹)에 전지(傳旨)하여 신주(辛柱)·이은동(李銀同)·정성근(鄭誠謹)·조호(曹浩)·윤석(尹碩)·성수기(成守沂)·오계정(吳繼貞)·이세륜(李世綸)·안말손(安末孫)·박무작(朴無作)·최말종(崔末終)·고수복(高守福)·김무동(金茂同)·목자산(睦自山)·진만석(秦萬石)·송수생(宋守生) 등의 고신(告身)을 돌려주도록 했다.

【태백산사고본】 39책 254권 23장 B면 【국편영인본】 12책 57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id/kia_12206022_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