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물 (一)/시랑공◇이지연

원주이씨(原州李氏)

용재공 16세손 이제민 2018. 12. 10. 15:30

원주이씨(原州李氏)


한자: 原州李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집필자: 이성운



[정의]
이반계(李攀桂)[? - 1392]를 분적 시조로 하고 해남에 정착한 이영화의 후손들이 전라남도 영암군에 분거하여 기반을 마련한 세거 성씨.

[개설]
원주 이씨(原州李氏)는 조선 시대 해남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445년 이영화의 해남 입향으로 해남 인근 지역에서 활발한 향촌 활동을 하였다. 다수의 인물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고, 영암 옥천면에 살았던 옥봉 백광훈의 아들 백흥남을 사위로 맞이하는 등 해남과 강진, 영암 지역의 사족들과 혼인 관계를 통해서 가계의 결속과 사회적 위상이 강화되었다.

[연원]
신원주이씨(新原州李氏)의 분적 시조는 이반계로 중조 23세이다. 진한(辰韓) 양산촌장(楊山村長)이며 경주 이씨 시조인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의 원대손(遠代孫)이며, 중시조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22세손이다. 1004년(고려 목종 7) 문과에 급제하여 문종 조에서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원주백(原州伯)에 봉해진 상서공(尙書公) 이신우(李申佑)의 11세손이며, 월성부원군에 봉작된 이지수[李之秀, 경주이씨 14대파 중 월성군파 파조]의 동생 이지연(李之衍)의 셋째 아들 좌찬성 이성(李誠)의 3남 중 둘째 아들이다.

원주 이씨족보를 보면 이신우의 11세손인 경원군 이반계에 이르러 경주이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원주로 삼게 되었으며, 초기에는원주의 별호인 익흥(益興)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원주 이씨는 두 계열이 있는데, 중국으로부터 건너와 원주에 정착한 이춘계(李椿桂)의 이씨를 구원주 이씨(舊原州李氏)라고 하고, 경주 이씨에서 분관(分貫)한 이반계의 후손을 신원주 이씨라 부른다. 따라서 구원주 이씨와 신원주 이씨는 동본이조(同本異祖)로 서로 혈통이 다르다.

[입향 경위]
경기도 광주에 세거하다가 1445년 해남군 마산면 산막으로 내려온 것은 이신우의 15세손 이영화였다. 이영화는 단종 때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로 나갔으나, 수양 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린 후 홀로 해남 마포 오호강변 무진산 아래[현 해남군 마산면 산막리]로 입향하여 강릉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후손들은 이영화의 뜻을 이어받아,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9명의 충신이 배출되었으며 3대에 걸쳐 효자가 나왔다. 이영화의 묘역에는 구충삼효(九忠三孝)의 사당과 정문이 세워져 충절 전통 가문인 원주 이씨를 더욱 빛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장(李樟), 이남(李楠), 이원해(李元海), 이홍신(李弘信), 이지훈(李之訓), 이계정(李繼鄭) 등을 들 수 있다.

이영화의 후손들이 해남 인근에 분거 정착하게 되면서 영암에 원주 이씨가 정착하게 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영암 지역에는 87가구 245명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영암 월출산 내에 원주 이씨의 비석이 있다.

[참고문헌]
영암군지 편찬 위원회, 『영암군지』(영암군, 1998)
『영암읍지(靈巖邑誌)』 (영암 문화원, 2009)
이은정, 「조선 후기 해남 산막리 원주 이씨 문중 연구」(『지방사와 지방 문화』, 2011)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디지털 진도 문화 대전(http://jindo.grandculture.net)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yeongam.grandculture.net/Contents?local=yeongam&dataType=01&contents_id=GC04400867